열린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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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기도할 때(눅22:39-46, 송재국.2006-06-18)
   관리자   | 2006·08·14 18:24 | HIT : 882 | VOTE : 164 |
지금이 기도할 때(눅22:39-46)

그리스도인들의 활동 가운데 기도는 특히 약속이 보장된 활동입니다. 더구나 기도는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지식적으로 특별한 어떤 것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그러면서도 기도는 성경에 다양한 사례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요즘 신자들에게 어필됐던 야베스의 기도나, 5만 번 응답받은 죠지 뮬러의 기도 등은 이미 서점가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음서에는 주님의 기도와 관련된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언급하신 것과 또한 가르치셨다는 것 등입니다.
주님은 기도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6:9)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할 내용까지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주님은 친히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기도하는 삶을 사셔야 하셨고 기도가 필요하셨다면 우리는 더욱 기도 없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주님께서는 중요하고도 큰일을 만나실 때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눅3:21). 주님은 또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으며(마4:2), 그리고 열 두 제자들을 세우실 때도 주님은 밤이 맞도록 산에서 혼자 기도하셨고 다음 날 산에서 나려오신 후 열 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눅6:12). 뿐만 아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공식적으로 밝히실 때도 먼저 기도하기도하였습니다(눅9:18).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간절히 기도하신 내영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우선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는 제자들이 지금 기도할 때였다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지금은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시102:1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Ⅰ.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39)

본문에는 주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39)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 되어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던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요18:2). 이것은 예수님께서 습관대로 항상 감람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아침이 일찍 새벽에 기도하시기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막1:35). 예수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감람산에 들어가셔서 쉬셨는데 기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눅21:37).
그러므로 기도하는 습관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시간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있어도 기도시간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해서는 되겠느냐고 하지만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딤전4:8).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기도했다는 기록이 무려 약 30회나 나타납니다(행1:14, 2:42 등).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역사는 기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간절히 기도하므로 기다렸으며(행1:14), 고넬료는 제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다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는 계시를 받았으며(행10:3), 그 이튼 날 베드로는 제6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다가 고넬료의 집에 복음을 전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행10:9). 그 당시 기도시간이라는 것은 유대교의 습관을 따라 정해진 것입니다. 교회가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 가운데 있었지만 유대교의 좋은 습관은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사로 파송할 것을 지시받았습니다(행13:2,3). 그 결과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던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 반드시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습관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도는 신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며, 위대한 열매를 열리게 합니다.


Ⅱ.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40)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로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본문의 짧은 말씀 가운데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교훈을 두 번이나 하시고 계십니다(40,46).
주님은 베드로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고 하셨습니다(눅22:32).
우리는 강한 것 같지만 연약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유혹을 이기고 물리칠 것 같지만 항상 지고 맙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육체에 거하시면서 그 연약함을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주님은 마귀에게 세 번이나 시험을 받으실 때도 먼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6:18)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는 일 외에는 다른 대비책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변화산에 머물고 계실 때 산 아래 있었던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와서 고쳐줄 것을 요구한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그들이 귀신을 쫓아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받은 능력만 믿고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 그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도하므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참으로 각종 유혹이 꼬리를 물로 나타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이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시험을 물리치는 유일한 무기요 능력을 입을 수 있는 길입니다.


Ⅲ.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42)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육체적인 괴로움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때문에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더욱 주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길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시면서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습니다. 또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막14:33,34). 그러므로 주님은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는 것이 필요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기도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십니까? 혼돈된 세상과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지금 기도하십시요!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결정하고 그 후에 기도는 약식으로 하거나 양념으로 한다면 의미가 없는 기도가 되고 맙니다. 일은 우리가 이미 저질러 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서 묻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도록 지금 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Ⅳ.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43,44)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41). 이것은 우리의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무릎을 꿇으셔야 할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주님의 이런 자세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사력을 다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에 대하여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4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힘쓰고 애쓰며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주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힘쓰시므로, 애쓰시므로 그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 방물이 피 방울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로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께서 얼마나 애쓰시며 기도하셨는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의 기도하신 모습을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서 부르짖으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주님께서 세 번 눈물을 흘리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때에 대하여 복음서에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히브리서 기자를 통하여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므로 그 육체의 힘을 다 소모하셨습니다. 주님은 기진맥진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을 도왔습니다(43). 주님의 생애 가운데 천사가 나타나 주님을 직접적으로 도우신 일은 여기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 얼마나 간절히 온 힘을 다해서 탈진이 되도록 기도하셨는가를 의미합니다.
이 기도는 생사를 앞두고 하신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듯을 확인하고 그 뜻대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통곡하면서 마치 술에 취한 사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삼상1:10).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주에 취해 있다고 야단쳤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로서 하나님께 마음을 통한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나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기도에 취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면서 섬겼습니다(눅2:36-38). 안나는 결혼 후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그 후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며 섬겼습니다. 그의 끈질긴 기도는 성육신하신 주님을 가슴에 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습니다(사39:2).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가 죽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벽을 행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와 같이 기도한 것은 그를 도울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기도였습니다. 절벽과 같은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기도는 신자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놀라운 특권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의 들으심을 얻을 수 있는 기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본받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기도의 자세입니다.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6)
     
         
853   약속있는 계명(엡6:1-3, 송재국:2006-05-14)   822
852   그리스도 안의 부부관계(창2:18-25, 송재국.2006-05-21)   750
851   섬김의 자세(벧전3:8-12, 송재국.2006-05-28)   791
850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창26:23~33, 송재국.2006-06-04)   866
849   육신의 힘 겨루기(송재국.2006-06-11)   832
   지금이 기도할 때(눅22:39-46, 송재국.2006-06-18)   882
847   어떤 믿음의 사람(이삭)의 생애에 대한 평가(송재국.2006-06-25)   950
846   하나님을 바라라(요6:1-14, 송재국.2006-07-02)   769
845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송재국.2006-07-09)   817
844   (김응환.2006-07-16)   1007
843   요셉의 생애에 나타난 그리스도-1(창37:1-28, 송재국.2006-07-23)   861
842   요셉의 생애에 나타난 그리스도-2(창37:29-36, 송재국.2006-07-30)   919
841   성장하지 못하는 신앙의 원인(마13:4, 송재국.2006-08-27)   907
840   꿈꾸는 자(창37:5-11, 송재국.2006-09-03)   791
839   절망의 터널에서(창37:12-36, 송재국.2006-09-10)   821
838   그리스도인의 인격형성(창37:1-11, 송재국.2006-09-17)   777
837   성공의 비결(창39:1-6, 송재국.2006-09-24)   807
836   유혹(창39:6-13, 송재국.2006-10-01)   852
835   무고한 고난을 당할 때(창39:7-20a, 송재국.2006-10-08)   855
834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22:10)" (이종진.2006-10-15) 1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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