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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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있는 계명(엡6:1-3, 송재국:2006-05-14)
   관리자   | 2006·08·14 18:12 | HIT : 821 | VOTE : 111 |
약속있는 계명(엡6:1-3)

이미 잊혀져버린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0년 5월 25일, 과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집에 있으면 비디오만 보던 이은석이라는 24세 대학생이 부모를 죽여 토막내 쓰레기봉투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발각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후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직후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이시형 박사는 “최근 중․고․대학생 환자들을 진료해보면 ‘죽이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할 정도로 부모를 증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보다 더 앞서 1995년 3월 20일,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소유한 금용학원 이사장 김형진(72세)씨가 안방에서 예리한 흉기에 목이 찔린 상태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의 사건조사결과 범인은 죽은 사람의 큰 아들 S대 경제학과 교수인 김성복(41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상의 두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듣는 사람들을 다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이런 사건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나 대형사건이라도 그것을 오래 간직하고 있을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이런 반인륜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부모들의 지나친 욕심이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잘못시키므로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만 결과입니다.
어린이날은 공휴일인데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닌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은 여전히 어린이는 잘 키워야 하지만 강변하지만 부모에 대한 의무는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것들이 다 어른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어린이들 중심이 되었습니다. 가정도 사회도 심지어 교회도 어른 중심이 아닌 어린이들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희생의 대상으로, 어린이들은 수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요?


Ⅰ. 하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1).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천륜으로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관계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관계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인간의 자유의지나 선택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결정해 주신 관계입니다.
부모는 창조의 통로이며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10계명 중 사람에 대한 계명의 첫째를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명령하였습니다. 10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되었는데(신4:13) 한 돌판에는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이며, 다른 또 하나의 돌판에는 사람과 관련된 계명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중 제5계명은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이 기록된 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는 것입니다. 율법서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레19:3, 20:9, 신5:16, 27:6). 잠언에서도 가르치고 있는데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어디서나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가정과 사회를 세우고 나라를 세우는 것이요 결국 자신을 세우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Ⅱ.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친구 사이의 우정도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변하고 맙니다.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사랑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평생 일궈온 꿈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자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식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 때문에 일찍 자지 못하고 자식 때문에 일찍 일어납니다. 그러나 어느 자식이 부모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일찍 잠을 자지 못하거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경우가 있었던가요?

미물들도 새끼를 사랑합니다. 순한 암탉도 병아리를 부화하여 데리고 다니면 함부로 병아리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사나워집니다. 암탉은 생명을 걸고 병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가시고기는 암놈이 알을 낳으면 수놈이 알 곁을 떠나지 않고 알을 부화시킵니다. 아버지 가시고기는 새끼 가시고기가 자랄 때까지 새끼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전혀 먹이를 먹지고 못하고 돌봅니다. 새끼들이 자라면 자신을 먹이로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품을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지라도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도 하나님은 사랑의 성품을 부모에게 주셔서 자식들을 낳아 기르게 하십니다. 만약 부모가 자식을 양육할 때 사랑의 감정이 없이 기른다면 과연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까요? 부모가 갖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를 거역하고 공경하지 않는 현실은 마지막 세대에 일어날 현상들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급속도로 변하는 것은 종람이 가까워왔다는 징조입니다.
성경은 마지막세대의 현상으로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2)라고 했습니다. 또한 대환란시대의 현상으로서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10:21)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종말의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부모를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고 하였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할 때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는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세대차이가 날 것입니다. 생각하는 차이가 날 것입니다. 가치관의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식의 수준도 차이가 날 것입니다. 지금의 50대 이상의 경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랄 때는 배우냐 배우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가 더욱 급한 일이었으며 여기에 사활을 걸어야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견디고 일군 부모들의 힘이 오늘날 자녀들의 세대에 풍성한 삶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무식하다거나 배우지 못하였다거나 그것도 몰라요 라면서 무시하는 것은 부모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 불효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부모를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순종과 공경은 실질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문제에 있어서 “고르반”이라고 하면 부모님께 드림이 되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부모님께도 드리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고르반”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말로만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요 실질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것이 되어야 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약속있는 계명이기 때문이다(2).
성경에 부모를 공경했던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는데 삼손과 다윗입니다. 삼손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이며(삿14:6,16), 다윗은 부모를 공경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삼상22:4). 삼손은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거나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므로 우를 범하였고 그 결과 치욕적인 삶을 살았으며 죽었습니다. 다윗은 그 자신의 몸도 지탱하기 어려운 난국에도 부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압 왕께 부탁하여 부모님을 피신시킨 후 사울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룻은 시모인 나오미를 공경한 인물로서 복을 받은 여인입니다. 룻은 남편을 잃었지만 시모 나오미를 따라서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그녀가 가나안 땅에 온다고 한들 소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 돌아가는 시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없어서 고향을 떠나 시어머니의 나라로 왔던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날마다 이삭을 주웠습니다. 이와 같은 헌신적인 룻에 대하여 보아스는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룻2:11)고 칭찬하였습니다. 룻은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의 이름이 이방여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주 예수님은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눅2:51). 전승에 의하면 요셉은 5남매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혹자는 요셉이 마리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예수님게서 일찍 가정을 책임지셔야 했다고 전합니다. 공생애 이전 나사렛에서의 주 예수님은 부모를 섬기며 가정을 책임진 분이십니다. 또한 주님은 십자가에서도 그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을 낳아주신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요19:26,27). 주님의 모범은 죽을 때까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10계명은 10가지의 계명으로 구성되었지만 약속이 있는 유일한 계명은 제5계명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러면 왜 제5계명만은 약속을 주셨을까요?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의미는 십계명의 인간관계와 관련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랍비 전승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 제5계명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제5계명은 계명 중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계명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상이 함께 동반된 계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잘 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하나님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보상이 약속된 유일한 계명입니다. 그 약속들은 땅에서 잘되게 하신다는 것이며 장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사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길입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단순히 오래 산다는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 후손들에게로 흐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성경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범위를 의미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 이상의 도덕으로서 천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바뀌어도 부모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나를 위하여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희생을 자원하시는 분은 오직 부모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기억하시고 부모님께 순종하시고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이것이 약속있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6)
     
         
  약속있는 계명(엡6:1-3, 송재국:2006-05-14)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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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무고한 고난을 당할 때(창39:7-20a, 송재국.2006-10-08)   855
834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22:10)" (이종진.2006-10-15) 1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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