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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롬1:17)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9-04-14 14:31:34, 조회 : 1,213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롬1: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상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시므로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인들은 율법의 의를 통해서 또한 종교적인 열심이나 자신의 육신의 성품의 변화를 통해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의 길인 하나님의 의를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의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거룩하며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하나님처럼 거룩하며 의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인간으로부터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하고 봉사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조금 더 선한 사람과 조금 더 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과 무기징역에 처해야 하는 죄인, 몇 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죄인, 혹은 벌금을 물어야 하는 죄인, 또한 죄는 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는 재판을 받지 않은 죄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즉 율법의 눈으로 볼 때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증거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조금 더 종교적인 사람과 조금 더 의를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 또한 평판이 조금 더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물에 빠진 쥐와 물에 젖은 쥐와 같은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이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요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의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 열납되고(받아들여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의롭게 되며,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 의를 가지고 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로서 의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한 의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마련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공되는 의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입니다. 여자에게서 나셨으며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갈4:4). 율법에 대해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율법의 일획일점까지도 완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판단하거나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죄책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대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율법의 형벌이 예수님에게 부어졌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즉 율법의 모든 빚을 다 갚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계신하신 것을 우리가 계산한 것처럼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죄의 빚을 십자가에서 청산한 것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려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의가 “하나님의 의”입니다.

Ⅱ.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것을 믿을 때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열심히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계명과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순종 잘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만희, 안상홍, 문선명의 가르침을 따르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에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에만 구원받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받는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 잘하면 믿음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새벽기도에도 빠지지 않고 전도행사에도 빠지지 않으면 믿음이 좋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출석하면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만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의미합니다. 그 구속을 믿었을 때 구원받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라는 말씀을 믿음이 점점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치며(Calvin),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NIV), “오직 믿음을 통해서”(공동번역), 혹자는 복음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역사한다고 가르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라는 말씀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그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만 믿음이 되며 곧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만 전가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행함으로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잘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믿고 성실하게 살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오직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또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습니다. 그는 율법으로 볼 때 가장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그의 출신과 그의 수련과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것 즉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율법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루었던 모든 것을 구원받기 위해서는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Ⅲ.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데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기록된바”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1:2)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에 의해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처음부터 말씀하신 것이며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시하신 것입니다(롬16:25,26, 엡3:3-6).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날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패”는 어떤 환난이나 위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며,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는 말씀은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복의 근원이시며 그 복을 약속하신 분으로서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상급”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상속자를 주셔서 아브라함의 후대를 책임지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2,3)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4)라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셔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공의로 여기시고”(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롬4:1-3)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오직(just)”은 다른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음만이 유일하게 살 길이라는 뜻입니다. “살리라(ζήσεται, shall live)”는 말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을 의미합니다(요3:16, 5:24).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생명의 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기
1.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에서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2.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는 무엇을 믿을 때 구원받는 믿음이 된다는 것인가?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것은 무엇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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