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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롬1:17)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9-03-31 18:07:06, 조회 : 979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복음(롬1:17)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첫 마디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16)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복음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즉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또 다시 사도 바울은 복음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므로 구원의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Ⅰ.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 소식(good tidings)”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 복음(유앙겔리온)은 “좋은”과 “소식”이라는 뜻을 가진 두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 좋은 일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행동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군대가 자신들의 나라를 정복하려는 적군과 마주했을 당시, 전령들은 싸움의 승패를 전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를 거두었을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나타내어 다른 신들을 믿었던 적군들을 물리쳤다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받아들였습니다. 승전보를 전하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호칭했으며, 그 소식을 전하는 자를 가리켜 “복음 전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승리의 소식이요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오늘날 전도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복음의 성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소식을 들을 때 그 소식의 성격이 무엇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소식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지난 2월 말, 하노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의 역사적인 회담이 이루어졌는데, 미국과 북한은 이 회담을 위해 수백 명씩의 준비위원을 두 달여 전부터 파견하여 준비하였으며, 김정은이는 무려 60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회담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귀를 세우고 좋은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들려오는 것은 회담결렬 소식이었습니다. 물론 실질적으로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결렬이지만 우리는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한반도를 놓고 즉 이해당사자는 빼놓고 회담을 하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들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문제를 그들만의 생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었는데 그마저도 합의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노이 회담 소식은 우리에게는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복음을 소개하면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하므로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식이 담겨 있는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더구나 성경의 복음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Ⅱ.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복음이 “좋은 소식”인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인류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잃어버렸습니다. 인류는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중요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또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듣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법정적인 용어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법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사6:3, 계4:8)라고 칭송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지고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받아들여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만큼 거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처럼 거룩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수양을 쌓고 율법을 지키며 선한 생활을 힘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처럼 완벽하게 거룩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율법을 따라 섬기는 것을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죄를 범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십계명까지도 지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거하는 죄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8-20)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즉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구속)”을 의미합니다. “속량(구속)”은 “속전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노예우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고파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당시 건장한 노예 한 사람은 은 30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은 30에 팔렸습니다(마26:15). 요셉은 아직 소년이었기 때문에 은 20에 팔렸습니다(창37:28).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인인 데도 불구하고 “의롭다” 즉 “죄가 없다”, “무죄다”라고 선언하신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도 공평하신 분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속하시므로 그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를 전가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으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내어주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갚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속량(구속)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할지라도 “속량(구속)”을 이룰 수 없습니다.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자기 죄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속량(구속)”이 있는 것입니다.

Ⅲ.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구속)”이 이루어졌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3:25,2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은 예수님께서 화목제물로 드려지므로 그 피로서 모든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흘리신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으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므로 죄 값을 갚으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구속)”이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행위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율법의 행위나 인간적인 종교생활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반복해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Ⅳ.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를 나타내셨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롬3:21.22). 이것은 복음을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25) 나타내신 것입니다. “간과(看過)하심으로”라는 말씀은 전에 범한 죄를 그 때 그 때 심판하지 않으시고 넘어가시므로 혹은 눈감아 주심으로 참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해 기다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53:11)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는 주 예수님께서 찔림을 당하시고 상함을 받으셨습니까?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까?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은 누구에게 담당시키셨습니까?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사53:11a)는 말씀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또한 성막과 성전과 각종 제사의식을 통해서 예고하셨던 죄를 대속하는 사역을 완전히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저주를 받아 죽음을 당하셨던 예수님께서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겼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주 예수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서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53:11b)에서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세상에 보내신 그 뜻대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완수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십니다. “자기 지식”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식”은 복음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단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감당하시므로 이루어 놓으신 구속(속량)으로 믿는 자들을 의롭다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죄 값이 갚아졌습니다. 모든 죄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에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Τετέλεσται)”(요19:30)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외치셨던 “다 이루었다”는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의미일까요? “다 이루었다”는 것은 “다 갚았다”는 의미로서 상업적인 용어입니다. 계산이 이미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지불할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빚을 다 갚았다면 더 이상 갚아야 할 의무가 없어진 것입니다. 더 이상 빚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빚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구세주로서 또한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혼녀의 임신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던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라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야 했던 이유에 대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어린양이신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으셨습니다. 누가 그 아들을 살릴 수 있는데 죽음에 내어주겠습니까? 더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른 길이 있으면서도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본체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음을 당하시므로 우리 죄를 대신하신 주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다 갚았다”고 선언하신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가 다 갚아졌다는 것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기
1. “복음”의 문자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복음”의 성경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2.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3.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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