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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의 정체(실체, 마19:16-19)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8-04-29 19:19:56, 조회 : 1,205

율법의 정체(실체, 마19:16-19)

선한 청년의 영생을 얻기 위한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마19:16-26)
어떤 선한 청년이 예수님에게 달려 나와 꿇어 앉아 자신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의 질문에 대해 끝까지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청년)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
그 때 주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어느 계명이오니이까”(18)라고 또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라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달려 나온 청년에게 왜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과연 계명 즉 율법을 지키면 생명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지 못하셨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은 증거하기를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히7:1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3:10)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갈3:10)라는 것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뜻은 재앙이나 불행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이 아니라 심판의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지만 그의 의도처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 즉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계명과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수 있는 것처럼 인식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아직도 율법의 목적 즉 율법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Ⅰ.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롬4:15)

사도 바울은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라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것을 선택하신 백성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선하고 완벽합니다. 의롭고도 거룩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그런데 사도 바울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라고 증거한 것은 인간 편에서 본 율법에 관한 관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증거한 것은 율법이 선하고 완벽하고 의롭고도 거룩하지만 인간이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진노를 이루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행위의 완전함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켰을지라도 단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면 다 지키지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불완전한 인간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는 법입니다.

신28:58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59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고후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그러므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국가의 법이 없다면 범법자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교통법규가 없다면 도로 한 가운데 차는 세워두어도 법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도로 가장자리에 네모 그려놓고 돈 받는 것 보세요. 정해진 차가 아닌 다른 차를 세워두면 끌고 가버립니다. 차를 끌고 가면 벌금물고, 주차비까지 물고, 끌고 간 비용까지 물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율법이 없다면 율법을 범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실체는 진노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Ⅱ. 율법은 초등교사입니다(갈3:23-25)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23)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게 되기 전에 즉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성취되기 전까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라는 것입니다. “초등교사”라는 단어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초등교사(παιδαγωγός)”라고 번역된 단어는 “초등학교교사”라기보다는 6세부터 16세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노예 신분의 종을 가리키는 말로 “아이를 돌보는 자” 혹은 “어린아이에게 시중드는 자”를 의미합니다. 혹은 “가정교사”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귀족신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가정의 예법을 가르치기도 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고 갔다가 집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장성한 후에는 더 이상 노예의 인도나 가르침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일시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우리나라가 근대화되기 시작할 때 서양의 군대조직과 훈련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귀족 대감의 자제들부터 훈련을 받았는데, 종들이 귀족마님의 자제들을 업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때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정체는 직접 죄인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의 정체는 율법을 지키므로 우리를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Ⅲ. 율법은 그림자입니다(히10:1)

히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증거하는 것은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은 “참 형상”으로서 그리스도와 그 사역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구속을 의미합니다.
“그림자”라는 것은 실상이 아닙니다.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통해서 어떤 물체를 희미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참 형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 안에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드려지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속죄일을 맞이하여 제사를 드릴지라도, 즉 끊임없이 제사가 드려질지라도 그 제사로는 온전하게 죄를 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히7:19)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만약 짐승으로 드리는 희생제사가 반복해서 드려지므로 온전한 구속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이며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로 완전하게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헛된 희생, 헛된 수고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율법과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주 예수님과 관계없이 선을 쌓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어떤 종교를 믿든 결국은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죄를 다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수주일, 십일조 생활,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헌신과 봉사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천지의 주제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은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께서 피조물들을 위해서 헛된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과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증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ὑπέρ)”는 “우리를 대신하여”입니다. 즉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받으시므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속량하셨으니(ἐξαγοράζω)”라는 단어는 “몸값을 치르고 되찾다” 혹은 “손해(損害)에서 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으로 즉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며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즉 “다 갚았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십계명이나 율법을 지키므로 된 것이 아니라, 선한 삶을 살므로 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므로 된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흘려진 피로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이 다 갚아진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서로 나누기
1.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롬4:15)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2. “초등교사(몽학선생)”가 무슨 의미며 역할인지 설명하시오(갈3:23-25).
3. 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에 불과한가?(히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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