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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을 얻는데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마19:21-26)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8-04-26 09:19:19, 조회 : 1,252

영생을 얻는데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마19:21-26)

성경에서 계시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명과 율법을 지켜도 불가능하며, 선하게 착하게 살더라도 안 되며, 고상한 인품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지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님께 찾아온 선한 청년에 대해 계속해서 상고하고 있는데, 이 청년을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과 여러분을 비교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데에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혹시 청년이 갖고 있는 소유와 꿈이 여러분들에게도 걸림이 되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소유와 꿈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년 동안 혹은 수십 년 동안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영원한 복락 가운데 거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Ⅰ. 영생은 누구에게나 해결해야 할 문제(16)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기 위해 요단강 건너편 베뢰아 지방을 통과하고 계셨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로 “달려와서 꿇어 앉아”(17) 질문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의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 달려 나왔으며, 예수님 앞에 꿇어앉았던 것입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에게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곧바로 “어느 계명이오니이까”(18)라고 또 질문했습니다. 이와 같은 청년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즉시 대답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
청년은 또 다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 참으로 대단한 청년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달려 나온 것부터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 질문한 것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는 것이나 참으로 대단한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끈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청년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몇몇의 훌륭한 랍비들을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이 청년이 찾아온 것에 대해서 기뻐하셨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청년이라고 생각되셨던 것입니다. 그 청년은 부자이기도 했는데 거기에 관리이기도 했습니다(눅18:18). 또한 젊은이로서 선한 사람이었고 도덕적이며 종교적이며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정을 가진 청년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흔히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는 대상입니다. 복이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참으로 멋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돈이나 명예나 건강 등의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다 갖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육신적인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육신적인 야망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 대부분이 육신적인 야망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시로 누가 더 크냐로 다투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누가 좌우에 앉게 될 것인가로 다투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도둑이기도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우물에 물을 길으러 다니지 않고도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형제간에 부모의 유산을 나누는 재산싸움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해보려고 나온 이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영적인 문제 즉 영생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멋진 청년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때로는 수만 명,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든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 영적인 문제 즉 영생의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니고데모와 이 청년뿐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나이 많은 노년의 율법사였으며, 이 청년은 선하고 도덕적이며 일찍이 성공하고 출세한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오셨습니까? 이끌려서 왔습니까? 육신적인 문제로 인해서 찾아왔습니까? 어떤 문제로 나왔든지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나온 바리새인들조차도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이든지 예수님에게 나올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Ⅱ. 영생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막10:21)

그러므로 예수님께 달려와 꿇어 앉아 질문한 이 청년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영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그 열정과 지금까지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킨 그 청년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도 감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청년에 대해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막10:21)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셨습니다. 기뻐하셨습니다. 제자로 삼으시고 싶으셨습니다.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연적인 문제입니다. 즉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종교적인 사람들이나 방탕한 사람들이나 어떤 경우의 사람들이든지 다 필연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청년의 문제가 바로 여러분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필생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참되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처럼 여러분들도 예수님에게 달려 나오십시오.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 질문하십시오.

예수님께 달려 나아와 그 앞에 꿇어 앉아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라고 질문한 그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라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또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명과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킨 선한 청년은 “그만하면 충분하다, 너는 합격이다”는 말을 들을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셔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는데 즉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10:21)라고 말씀하신 것이 나타납니다.
그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즉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라는 말씀입니다. 계명을 다 지킨 세상에서 성공한 청년, 이런 청년은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청년은 율법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蒙學先生), 초등교사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 데는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의 허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죄 용서함에 대한 마음의 갈급함이라는 것, 더 나아가서 율법이나 계명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을 깨달아야 영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 청년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그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뜻밖의 말씀이었습니다.

Ⅲ. 스스로를 죽이는 자기 생각, 자기 의도(22)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2)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달려 나온 그 청년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자기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맙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복음이 들려져야만 귀를 기우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청년에게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재물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즉 재물을 포기하고 영생을 얻는 것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다 얻고 싶었으며 두 가지 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청년에게 있어서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재물이었습니다. 영생입니까? 재물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재물보다도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아직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생명을 기꺼이 던졌습니다. 화형을 당하면서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맹수의 먹이가 되거나 검투사들의 노리갯감이 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2010년 1월, 나이지리아에서는 이슬람들이 기독교 마을을 습격하여 300명을 죽였습니다. 3월에는 똑 같은 방법으로 500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 해마다 수백 명씩 희생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공개처형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생명까지도 포기하면서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작년에도 중국 연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목사 30명이 무더기로 추방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막8:36, 눅9:25)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참으로 합당한 말씀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Ⅳ. 영생을 얻는 불가능한 것과 가능한 것(26)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간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3,24)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므로 하늘에 선을 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늘귀로는 파리나 모기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보통 낙타의 어깨 높이는 1.8-2m로서 사람의 키보다 더 높으며, 몸무게는 성인 10명을 합해야만 될 정도로 250-680kg이나 됩니다. 그러므로 강아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걱정스러웠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면 근본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인식되는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듯이 일반 서민들은 생각하지도 못할만한 죄를 범하고서도 부자들은 금방 풀려납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다 누리고 살 뿐만 아니라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거나 부자천국입니다.
이번에 제주도 여행길에 하나님의 은혜로 신라호텔에서 머물렀습니다. 하루 머무는데 40만 원 이상, 아침 식사만 4만 원 대, 수영장에서 방갈로 3시간 빌리는데 15만 원, 음료수 한 잔 15,000원,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돈 같지 않지만 돈이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제공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돈이면 대제사장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세상은 돈이면 죽이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은 많은 재물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으며, 제자들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되는데 부자가 영생을 얻는 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25)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 즉 구원을 얻는 것은 부자는 불가능합니다. 즉 부자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 구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25)라고 한 질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부자는 불가능하다. 부자라도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 스스로 계명을 지키거나 선하거나 세상에서 이룬 성공이나 인간됨이나 종교적인 수행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해결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사람도 선한 사람도 열심 있는 사람도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25)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선행이나 됨됨이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믿음에 따른 선물입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들의 개인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기
1. 왜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그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을까요?(21)
2.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뜻은 무엇일까요?(24)
3. 구원을 얻는 것은 (        )으로는 할 수 없지만 (          )으로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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