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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한 가지 부족한 것(마19:16-22)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8-04-15 18:00:35, 조회 : 1,042

그래도 한 가지 부족한 것(마19:16-22)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가 나름대로 구원의 문제를 제시하지만 오직 기독교만이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귀신들까지도 바울과 전도단을 가리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16:17)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즉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가 부족합니까? 헌신이 부족합니까? 선한 삶이 부족합니까?
예수님을 찾아온 선한 청년은 계명까지도 다 지켰다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우리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Ⅰ.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있어서(16)

예수님께 질문하기 위해-“달려와서 꿇어 앉아”(막10:17)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기 위해 요단강 건너편 베뢰아 지방을 통과하고 계셨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로 “달려와서 꿇어 앉아”(17) 질문하였습니다.
어떤 선한 청년에게 중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께서 그 지방을 통과하시게 되자 그 사람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꿇어 앉아 질문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 지방을 지나쳐버린다면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물어보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모세는 기도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기회가 두 번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라”(S.R.N. 샹포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도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온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기회는 일평생 한 번도 오지 않는 기회도 있으며, 또 어떤 기회는 단 한 번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자주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예수님에게로 달려오십시오. 꿇어 앉아 질문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읍에 가셨을 때 삭개오라고 하는 세무서장이요 부자인 사람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찾아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 마침 뽕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나무로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로서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서는 그 기회가 지나가버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눅19:4). 그러므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잡기 어려운 기회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장로교회 다니는 저의 친구 하나는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생각 때문에 복음을 들으면서도 귀를 막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운명을 달리하므로 다시는 복음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시는 순간 예수님의 좌우에는 강도들이 못 박혀 사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강도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처럼 예수님을 욕했습니다(마27:44, 막15:32).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 중 하나가 예수님을 눈여겨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자신들은 강도질로 사형당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강도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에게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23:40,41)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향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달라고 송사하던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도 이들의 사주를 받아 아우성치던 백성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선고한 로마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을 채찍으로 치던 로마 군병들도 구원의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는 그 순간 예수님에게 자기 영혼을 의탁한 강도는 구원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 시간 복음을 듣고 영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1981년,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금성하이테크 TV 광고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선택하시면 10년만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시면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어 놓으며, 순간의 선택이 영원한 시간을 바꾸어놓습니다.

Ⅱ.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17-20)

구원을 얻기 원하는 분들에게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질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거나 복음을 집중해서 듣는다거나 이곳저곳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기도하기도 합니다. 십계명과 율법을 지켜보기도 하고 교회생활이나 종교생활을 열정적으로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생에 대한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 달려온 이 청년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선한 청년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고 달려와 예수님 앞에 꿇어 앉아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
여러분들도 겸손한 자세로 이와 같이 질문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영생에 관한 질문보다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질문이 또 있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이까”(18)라고 또 질문했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 오늘은 끝장을 낼 참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차일피일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은 바쁘다거나, 지금은 젊다거나, 지금은 시간이 없다거나,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지금은 생각이 복잡하다거나,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거나, 이런 생각으로 오늘 여러분들 앞에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그 청년이 다시 예수님에게 “어느 계명이오니이까”(18)라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또 대답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
그 때 청년은 또 다시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청년은 끈질겼습니다.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꿇어 앉아 질문한 청년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요 예수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과 절망과 낙심이 체면으로 해결될 문제입니까? 영생의 문제를 체면 때문에 잃어버리시겠습니까? 유황불이 타는 지옥에서 슬피 울면서 통곡하고 부르짖어야 하는 고통이 체면으로 해결될 문제입니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체면을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영원한 낙심과 절망과 패배와 고통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처럼 꿇어 앉아 끈질기게 질문하십시오. 오늘은 끝장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각오하고 집중해서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라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또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청년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Ⅲ.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에 있어서(21,22)

왜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였는가?
이 청년은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습니다.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할 정도로 종교적이었습니다. 관리였습니다(눅18:18). 도덕적으로도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는 대상입니다. 복이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돈이나 명예나 건강 등의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자 갖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영적인 문제 즉 영생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달려와 꿇어 앉아 질문한 이 청년에 대해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막10:21)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21)
마가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막10:21)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네가 완전하기를 원한다면”입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는 뜻입니다.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는 말씀은 아직도 한 가지 이행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킨 청년, 부자요 관리요 선하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청년, 더구나 영적인 것을 추구하므로 예수님께 달려 나와 무릎을 꿇고 앉아 질문한 이 청년에게 아직도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너에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청년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 한 가지 이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계명을 다 지켰어도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한 청년이요 도덕적으로 완전한 청년이었으며 관리였던 이 청년에게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에 대해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가서”, “팔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전제조건이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전제조건입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서”, “팔아”, “주라”는 것이 선행되어져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는 “가서”, “팔아”, “주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왜 이 청년에게 “그리고 와서”가 필요했을까요?

Ⅳ. 포기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에 대해서(21,22)

주 예수님께서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청년에게 하늘에 보화가 있게 하기 위해 그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와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에 대한 비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이 청년에게 있어서 영생을 얻는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청년은 참된 보화와 참된 진주를 하늘에 두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으며 그 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물로 여기고 있는 것이나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자신의 마음과 소망(所望)과 미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마6:19-21).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다가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마4:18-20). 야고보와 요한도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마4:21,22).
아기들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놀다가 더 흥미를 끄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재미있게 가지고 놀던 것을 던져버리고 더 흥미를 끄는 것을 쫓아갑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분들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가구들과 심지어 가전제품까지 모두 돈을 들여 버리고 갑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께 달려와 꿇어 앉아 질문한 이 청년은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2)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물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즉 재물을 포기하고 영생을 얻는 것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다 얻고 싶었습니다. 두 가지 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둘 중의 하나는 포기해야만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결과적으로 재물 때문에 영생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생을 얻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습니까? 포기한다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영생은 여러분의 것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기
1. 청년은 자신의 종교적, 도덕적인 것으로 만족했는가?
2. 청년에게 아직도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3.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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