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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19:16-22)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8-03-26 05:55:25, 조회 : 1,018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19:16-22)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성경의 주제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구원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음을 당하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도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사활적인 문제는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에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요 선생이요 산전수전 다 겪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뜨거운 대낮에 사마리아 수가 성의 야곱의 우물 곁에서 한 여인을 기다리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고 대제사장에게로, 헤롯왕에게로, 총독 빌라도에게로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당하시고 채찍으로 맞으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형이 선고되고 선고되자마자 곧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못 박혀 죽게 될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셔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음을 당하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이며, 그의 제자들을 훈련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라고 말씀하신 것도 예수님이 우리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모든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면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고 죽음을 당하신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는 사활을 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선하게 산 사람도 악하게 산 사람도, 대통령을 하더라도 노숙자가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구원의 문제요. 큰 부자가 되어 날마다 잔치하며 호화롭게 사는 부자라도, 그 부잣집에서 버린 음식물로 배를 채우려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선하게 살고 있는 청년, 십계명 정도는 어렸을 때부터 다 지킨 청년, 재물이 많은 부자인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구원의 문제 때문입니다.
무엇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예수님께 달려 나와 구원을 얻기 위해 그 앞에서 겸손하게 듣는 것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Ⅰ.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지한 질문(16)

예수님을 찾아온 청년은 예의바르고 정직하고 선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지키고 십계명을 지킨 청년이었는데, 그러므로 건방진 태도로 예수님께 나와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합니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회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욱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대체로 교회생활 잘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콧방귀도 뀌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기초적인 것이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신은 모태신앙이다, 3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우리 아버지가 장로다, 목사다 등등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전도팀을 설득하려고 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온 이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도덕적이고 예의바르고 재물이 많은 부자였으며 종교적이면서도 영생의 길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알고 싶은 소원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젊음을 가졌으며, 재물을 가졌으며, 좋은 평판을 가졌으며, 열정적이고도 탐구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영생의 길을 알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혹시 이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할지라도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이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달려와서 꿇어 앉아”(막10:17)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이 청년의 태도를 통해서 이 청년이 얼마나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으며 질문하고 싶었으며 영생의 길에 대해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깨닫기를 원하였는지 나타내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영생의 문제를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깨닫기 원한다면 예수님께 달려 나와 그 앞에 꿇고 질문해야 합니다.
그 청년은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 이 청년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확실하지 못한 것은 영생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가졌다고 할지라도 더 중요한 것은 영생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영생을 얻기 위해 이 청년처럼 예수님을 찾아오십시오. 예수님 앞에 꿇고 엎드려 질문하십시오. 영생을 얻는 것은 세상에서 그 어떤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 얻는 것보다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Ⅱ. 더 차원 높은 질문(17)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그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이까”(18)라고 또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청년이 질문한 대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18,19)라고 말씀하시자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또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계명의 대인관계에 해당되는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만만했을 것입니다. 그 정도야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청년이 어렸을 때부터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을 찾아온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또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아마도 예수님께로부터 계명을 잘 지키고 있었던 것에 대해 칭찬을 받으며 격려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갖고 예수님께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는데, 그의 대답은 율법과 계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의 사고방식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그의 말대로 계명을 지켰다고 할지라도 율법과 계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즉 율법과 계명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사도 바울처럼 율법의 의(義)로는 전혀 부족함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빌3:6). 따라서 그는 예수님 앞에서도 이 모든 것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며 “자기 의(自己 義)”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 청년은 자기성취욕구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교회생활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교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노천카페나 지하철카페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교회생활이나 헌신과 봉사 등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신다거나, 그것으로는 하나님께서 모른다고 하실 것이라거나,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 갈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면 다시는 복음을 듣기 위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청년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찾아왔다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니까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무엇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차원의 질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Ⅲ. 채워지지 않은 문제(20)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What do I still lack?)” 청년은 자신이야말로 영생을 얻기 위해 모든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랍비들을 떠나 예수님에게로 온 것입니다. 무엇인가 선한 것을 더 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이와 같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도 선한 일을 하는 것이며, 선을 쌓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얼마나 선한 일을 해야 합격될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서 선을 쌓다가 부족하면 성인들의 공로를 조금 얻어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인들(베드로, 요한, 스데반, 야고보 등)은 그들이 쌓은 선으로 구원받고도 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위적인 생각입니까? 이것은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이 청년은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도 이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선을 쌓으면 그것이 구원받을 수 있는 공로가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 청년도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켰지만 여전히 영혼의 불안과 궁핍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율법과 계명을 지켰지만 영혼이 불안하고 결핍된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 기준이 없으며 한계가 없다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는 것 즉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상고하였습니다. 즉 십계명이나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십계명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율법의 행위이든 선한 행위이든 종교적인 행위이든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힌두교나 불교나 이슬람이나 로마 가톨릭은 끝없는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의 수도사들은 평생 고행의 삶을 살아갑니다. 즉 오체투지 삼보일배로서 도를 깨달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을 수도할지라도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외에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수행을 통해서 인생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똑같은 결과를 얻을 뿐입니다.
무엇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우리의 종교생활로서는 우리 영혼을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로, 우리의 교회생활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Ⅳ. 생명이 되는 답변(21)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그러면 과연 이 청년에게 무엇이 부족한 것입니까? 청년의 말대로 계명을 어렸을 때부터 지킨 것이 영생을 얻기에 완전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라는 말씀은 “네가 온전하기를 원한다면(If you want to be perfect)”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의 “온전하다”라는 말은 계명을 지키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다거나 무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신적인 완전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의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무능과 부족을 철저하게 깨닫고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므로 서만 이루어지는 완전입니다.
즉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전한 편지대로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은 자기의 소유와 자신의 공로를 털끝만큼이라도 의지하면 얻을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은 부자였습니다. 그 청년이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영생의 길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어야만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청년이 조금이라도, 티끌만큼이라도 자신의 재물과 공로를 의지한다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고”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주님께로 와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청년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2)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청년은 마음의 재물도 많았지만 물질적인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절반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면 그 청년은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전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지식이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합니까? 여러분들의 젊음이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합니까? 여러분들이 가진 물질이나 미래가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합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목표가 있으니까 그 목표를 이룬 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아 죽을 때쯤 되어 예수님을 믿겠다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인생을 즐긴 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내일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내일이 보장되었습니까?
성공하고, 나이가 많아지고, 죽을 때쯤 되면 순수해질까요?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생길까요? 나이가 많아지고 더 많은 지식과 물질을 소유하게 되면 더 많은 혼란 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표들이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요?
영생과 비교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와 지식과 소유를 다 포기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십시오. 포기한다는 것은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만이 유일한 영생의 길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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