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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과 영생의 관계(마19:16-20)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8-03-11 20:16:53, 조회 : 1,034

율법과 영생의 관계(마19:16-20)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영생의 길목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율법과 영생의 문제입니다. 과연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구원의 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일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또한 구원 혹은 죄사함이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게 되면 율법을 지키는 문제뿐만 아니라 각종 의무에 시달리게 됩니다. 과연 그와 같은 의무를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구원받는 믿음일까요?

Ⅰ. 율법 안에서의 실패

율법의 적용(롬2:11-15)
사도 바울은 율법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율법에 대해 증거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율법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하였지만 율법을 지킬 수 없었으며, 이방인들은 율법마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을 해야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롬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 제시한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다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12).
율법을 받았다고 의인이 아니라 율법을 실천해야만 의인이다(13).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지만 모세의 율법이나 자기가 스스로 정한 율법이나 그 율법이 자신의 행위를 나타내므로 심판을 받는다(14,15).

율법의 오용(롬2:17-20)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롬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약속이었으며, 하나님께 특별히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은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졌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였으며,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도 그것을 왜곡하여 이방인들을 차별하여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경건함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율법 안에서의 실패(롬2:21-2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롬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법을 알았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역행하였습니다. 모델이 되고 모범이 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교만하며 부패하였습니다. 마치 그들이 잘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오히려 실패의 길을 가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Ⅱ. 계명들을 지키라고 요구한 이유(17)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율법 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문제를 갖고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한 이 청년에게 율법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제시하셨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길에 있는 이스라엘은 이미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온 청년에게 율법으로는 아니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어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 그 청년은 의아스럽다는 듯 “어느 계명입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뜻밖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율법 아래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율법 아래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데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라고 묻는 그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계명 중에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은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4개의 계명을 제외하고 이웃과 관련된 계명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웃과 관련된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순서대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것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자 그 청년은 그 모든 계명을 이미 지켰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막10:20)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율법으로 볼 때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생활 했다고 하면 믿음이 좋겠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하면 신앙은 보증수표라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켰다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청년처럼 계명들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들을 지켰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부터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까? 혹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후부터는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까? 지금도 계명을 지키는데 부족함이 없습니까?
또한 여러분들은 모태신앙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신 분들도 있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교회생활 잘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신앙생활 잘 했다고 생각하므로 구원은 당연히 받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까?

Ⅲ. 율법의 기능(롬3:19,20a)

그러면 중요한 것은 계명 즉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계명 즉 율법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 나아온 이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는데도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지만 그 청년은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계명은 지켰지만 무엇인가 선한 일을 더 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얼마나 계명을 더 잘 지키며 선한 일을 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는 그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대답한 청년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한 것은 계명이나 율법을 지켜서 혹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처럼 유사한 선한 일을 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 청년은 계명들을 어렸을 때부터 지켰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신 이유 즉 목적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부분 생각하기를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까지도 기독교를 믿는 것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타 종교인들이 갖가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질러도 별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만약 기독교인들이 조그마한 문제라도 일으키면 매스컴부터 온통 난리들이지요?
물론 기독교는 선한 종교요 선을 추구하는 종교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즉 기독교를 믿음으로 그 삶이 선하게 변하게 되며 선을 따라 살게 되지만 기독교 자체가 선하게 살므로 무엇인가를 성취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로 말미암아 기독교 안에서도 모든 종교는 결국 같은 고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까지도 있습니다. 즉 가는 방법은 좀 다르지만 영생을 얻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입니다. 대부분 종교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것에 대한 갈급한 심령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 인간이 생각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가르침을 교훈으로 삼아 헛된 길을 가고 있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8,9)
또한 그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그것은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착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들 중에 이 청년처럼 어렸을 때부터 교회생활하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혹은 지금까지 선하게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롬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율법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까?
첫째,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19) 즉 율법은 누구에게 말하는 즉 선언하는 것입니까?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 하에 있는 모든 사람 즉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면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1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입을 막고”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최소한의 변호마저 불가능한 죄인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율법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변호마저 허락되지 않을까요? “온 세상”입니다. 즉 “온 세상”은 그 어떠한 변명의 여지없이 죄로 말미암아 심판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전도서의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7:20)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변명의 여지없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20a)라는 말씀대로 “율법의 행위” 즉 계명과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 앞에 “외롭다” 혹은 “무죄하다”라는 선고를 받을만한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변명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처럼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기능은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의 기능입니다. 죄인을 죄인이라고 선언하는 기능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기능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여러분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므로 혹은 선하게 살므로 죄사함 받으며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시도를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치 맨몸으로 하늘을 날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태평양을 건너가려는 시도만큼이나 잘못된 것입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며 목회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곧 구원의 길이라거나, 계명과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나누기
1.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며 헌신하고, 죄를 범하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예수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왜 예수님께서는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청년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을까?
-율법(계명)의 역할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율법을 지켜서 죄사함 받으며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며, 또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지역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죄의 기준이 모호할 수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죄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온 그 청년은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킨 선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청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3. 죄의 대가는 무엇인가? 죄의 대가는 율법(계명)을 지키거나 선한 일을 하거나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롬3:20, 엡2:8,9, 벧전1:18,19) 사망이다(롬6:23, 창2:16,17, 겔18:4). 죄를 용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러므로 죄는 뉘우치거나 회개 기도로 용서될 수 없는데, 그것은 죄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회개 기도함으로 죄가 용서된다면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수억 번 이상 죽음을 당했어야 할 것이다(히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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