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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속물(代贖物)로 오신 예수님(막10:45)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6-12-04 23:02:06, 조회 : 1,746

대속물(代贖物)로 오신 예수님(막10:45)

본문은 기독교(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만약 본 구절의 의미를 깨닫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고 할지라도 만약 이 구절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결론을 말씀하시기 위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심판 때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앞 다투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7:22)라고 하소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심판주이신 예수님께서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고 최후의 선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오는 9일에는 국회에서 탄핵 표결을 결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탄핵이 이루어지는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9명의 판사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대통령을 하야시켜야 한다면서 아우성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하면 대통령은 탄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면 대통령은 모든 것을 잃고 내려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최후의 법정인 최후의 심판석인 크고흰보좌의 심판에서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선고하신다면,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고 선하게 살아왔으며 열심히 종교 생활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판결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해 요한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계20:11)
크고흰보좌의 심판석에는 예수님이 심판주로서 최후의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석 앞에는 땅과 하늘까지도 피하여 간 데 없었다고 증거합니다. 즉 심판주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심판을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최후의 심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서 심판주이신 주 예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주 앞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된 생명책이 펴졌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온 여정이 기록된 또 다른 책도 펴졌습니다. 심판은 책에 기록된 대로 집행될 것입니다. 또한 어디에서 살았던지 혹은 어디에서 죽었든지 그들 모두가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Ⅰ. 인자가 온 것은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의도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기 전에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영원한 하늘 보좌의 영광 가운데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만천사가 찬양하며 수종드는 하늘의 왕으로 계시다가 특별한 사역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어떤 위대한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그들의 존재의 시작이었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존재는 끝났고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우주와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지만 삼 일 후에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이 쳐다보고 있을 때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가 그 분의 시작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인자가 태어난 것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인자가 온 것은”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라도에서 태어나서 서울로 오신 성도들,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서울로 오신 성도들, 강원도에서 태어나서 서울로 오신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필리핀 성도들은 필리핀에서 태어나서 우리나라에 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늘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태어난 것은”이 아니라 “인자가 온 것은”입니다.

Ⅱ.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원문에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라는 말씀 바로 앞에 “왜냐하면(γὰρ)”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는 바로 앞에 있는 어떤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접속사를 의미합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며, 그들은 예수님을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지만 예수님은 삼 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심각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아와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35)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6)라고 물으셨습니다. 두 제자는 대답하기를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7)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서 언제든지 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마도 섬김을 받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성도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지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창조하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연히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 이외에는 섬김을 받으실만한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예배드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먼저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깨닫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섬기셨는가를 깨닫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오셨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며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Ⅲ.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희생하심으로 섬기신 것입니다.

“대속(代贖, λύτρον, redemption, atonement)”이라는 말은 “몸값”, “속전”, “석방금”이라는 뜻으로 “대신하여 갚아 주다”, “값을 주고 되찾아 주다”, “몸값을 치루고 놓아주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예의 값인 속전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대속물(代贖物)”은 대속을 위해서 지불되는 물건 즉 값을 의미합니다.

왜 인간에게 대속이 필요할까요?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며, 영원한 사망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롬6:23) 죄를 대속할 대속물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에(요3:36)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롬5:10)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2:1)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2:12)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므로(엡4:18)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골1:21)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주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대속물이 되셨는가요? 주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대속물(代贖物)”은 빚진 사람이 노예가 되었을 때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지불되는 돈을 의미합니다. 또한 전쟁포로를 석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가 되었을 때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뿌림으로 석방시켰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을 바쳐 죄인을 해방시켜주는 것을 가리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λύτρον ἀντί πολλῶν)”은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딤전2:6절에서도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으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53:11절에서도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λύτρον ἀντί πολλῶν)”이라는 말씀 가운데 “ἀντί”라는 단어는 “…의 대신에(in the place of, instead of)”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는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

서로 나누기

1. 본문 마가복음 10:45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어떻게 섬기셨는가?
2. 대속물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를 자신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3. 예수님이 대속물이 되시므로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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