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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 있는 사람3(롬4:6-8)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6-05-03 08:25:09, 조회 : 1,835

복 있는 사람3(롬4:6-8)

세상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며, 오래 살고 싶어 하며, 명예를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순간적이며, 영구적이지 못하다. 그 복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이 있는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이요 복의 근원으로 축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복이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라면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지 않아도, 갈대아 우르에서 눌러 살아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세상에서 피나는 노력을 하거나 투쟁을 해서 얻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며,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복입니다.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성경은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브라함에게는 진정한 복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롬4: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 복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이 복입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죄사함 받았다.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 즉 복은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사람 중심, 기복신앙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잘 살고 잘 되는 축복만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축복 즉 복은 이 세상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난을 이야기했지 편안한 삶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순교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사도 요한까지도 밧모섬에 유배되어 혹독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계1:9).
그러므로 기독교 즉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그 영원한 축복은 영원한 생명 즉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이요. 하나님의 하늘의 시민권을 얻는 복입니다.
왜냐 하면 이 세상에서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순간적이요. 일시적이요. 그것을 누리고 있는 중에도 근심과 걱정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복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된 대통령이지만 4년 만에 폭삭 늙어버렸습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은 한결같이 평안하고도 행복한 자리가 아닌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성인을 대표하는 이어령 씨는 70대 중반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의 많은 지식으로도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영성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희귀병 침샘암이라는 병으로 며칠 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씨는 불교와 천주교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는 결과적으로 어떤 하나님이 긍휼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민주당 당대표인 김한길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입니다. 마릴린 먼로는 36살에 자살하였습니다. 최진실은 39세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이 낳은 최고의 배우라고 부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7명의 남자와 8번에 걸쳐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야망을 실현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실례들이며,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위치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불변하는 행복입니다.

진정한 참된 복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점하는 여자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주었는데, 그 주인이 돈벌이가 끊어지자 소란 죄로 고발하였습니다. 관가에서는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죽을 만치 매로 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처형하기 위해 깊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절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찬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은 고통 가운데서 죽음을 앞에 두고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살인을 하고 자살을 하는 마당에 죽음을 앞에 두고도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은 기쁨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는 회유를 받으면서 “나는 86년 동안 나는 그분의 종이었습니다. 그 동안 그분은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총독은 또 다시 “가이사로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폴리갑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배우기를 원한다면 시간을 정하고 나에게 들으십시오.” 하고 대답했습니다. 총독이 말했습니다. “나는 야수들을 가지고 있다.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너를 그것들에게 던질 것이다.” 그 때 폴리갑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야수들을 부르십시오. 좋은 것에서 악한 것으로 회개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악으로부터 의(義)로 변화되는 것은 고귀한 것입니다.” 그 때 총독은 “네가 야수들을 무시하니 나는 너를 불태울 것이다.”라고 하자, 폴리갑은 “당신은 오직 잠깐 태우고 잠시 후에 소멸되는 불로 나를 위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악한 죄인들을 위하여 예비된, 다가오는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하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폴리갑은 불꽃 속에서 “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당신 앞에서 살고 있는 의인들의 경주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영과 육의 영생과 부활로 순교자들의 수에 포함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아들을 통하여 참으로 모든 일에 대해서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라고 기도하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소망과 행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다윗도 이 세상에서 잠시 있다가 없어지며, 그것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참된 행복이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참된 행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롬4:3)라고 하는 말씀 중에 “여기다”라는 단어는 특히 로마서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여기다(λογίζομαι-to reckon)”(3,4,5,6,9,10,11,22,23,24)는 “계산하다, 지불하다, 청산하다” 혹은 “인정하다”(8)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는 “여기다(ἐλογίσθη)”라는 단어가 부정과거 수동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성취도나 됨됨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의롭게 만들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평가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을 정도로 인격에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런 지위를 부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단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동네 다니면서 약을 파는 약장사들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젊은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놀아주니까 아침 드시고 약장사들이 있는 곳으로 출근합니다. 그들이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 불러주고 만담해주고 아픈 마음 긁어주는 것은 효도하기 위해서, 공경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결국 어르신들에게 좋은 약 좋은 식품이라고 선전하고, 그 약, 식품 드시면 금방 아픈 어깨 팔 다리 감쪽같이 시원하게 나을 것처럼 선전을 하는데, 좋은 약이라니까 주머닛돈 쌈짓돈 다 뒤져서 비싼 줄도 모르고 아들 며느리 몰래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 것은 돈으로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얻게 하십니다. 단지 믿음으로만 얻게 하십니다. 생명을 얻는데 드는 비용을 계산할 수 있을까요? 죽음을 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할 수 있을까요?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비용을 계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에 보리 추수를 한 직후나 가을 추수를 한 직후에 화주승들이 찾아 와서 아들 딸 잘 된다고 하면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보리와 쌀을 자루 채 퍼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것은, 죄사함 받는 것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단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시기 때문에 단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요 공부를 잘 해서 얻는 것도 아닌 단지 아, 그렇구나! 하고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데, 믿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하면 하나님 심판대 앞에서는 후회하셔도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행복론(6)

다윗의 행복론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관한 것입니다. 일을 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직 일한 것이 없이 믿음으로 받는 행복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는 “행위와 상관없이(without works, KJV)”를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반복해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 즉 죄사함을 받는 것은 행위의 노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여 즉 열심히 일하고 얻는 행복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입니다. 혹은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혹 하늘로부터 온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습니다. 즉 구원받을 수 없는 거짓 복음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0)라고 하였습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 즉 율법을 지키므로 무슨 선한 일을 하므로, 혹은 어떤 종교적인 헌신과 봉사를 하므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은 저주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주의 복음을 따르겠습니까? 저주의 복음을 받아 헌신하며 순종하고 믿겠습니까?

그러면 다윗이 말한 행복론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7),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8)라고 증거하였습니다. 7절과 8절은 같은 의미의 말씀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입니다.
7절의 “죄”는 본질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성품 다른 말로 하면 죄의 뿌리 혹은 죄의 씨앗을 가리킵니다. 또한 8절의 “죄”는 복수로서 “죄들”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뿌리 혹은 죄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갖가지 죄를 범합니다. 이것은 결심을 해도 불가능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도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또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본질적인 죄와 그 열매들인 죄들을 용서함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요 죄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이미 다윗이 시편 32:1,2절에서 증거한 내용입니다. 즉 사도 바울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이미 증거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
허물과 죄를 용서함 받고 정죄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를 용서함 받고 정죄를 당하지 않는 것은 죄를 범했지만 죄를 용서함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용서함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 죄의 대가를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라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시므로 우리 죄 값을 갚으셨습니다. 그 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의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가 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용서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습니다. 즉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행복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받는 것입니다.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불법을 용서함 받고 그 죄가 덮어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인정하지 즉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당신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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