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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마20:28)
글쓴이 송재국  [홈페이지] 2019-11-10 18:00:07, 조회 : 993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마20:28)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합니까? 물질, 취직, 졸업, 결혼 등 사람마다 각자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문제인 죽음입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종교가 생겼습니다. 철학이 생겨나고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였습니다. 수도 없이 인생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생겼습니다.
철학자 박이문 교수는 “인생의 답을 찾아 평생 헤맸지만 결국 답이 없다는 답을 얻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평생 노력했지만 인생의 궁극적 의미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이 없다는 답을 알게 된 거죠. 사실 인생의 의미가 뭐냐 하는 물음은 성립이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선 그걸 찾으려는 노력조차 헛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의미’는 가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철학자들과 같은 방법으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다고 할지라도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으로 인생의 문제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인생의 문제는 사람의 노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그 답입니다.

Ⅰ. 인생의 공통적인 문제들

그러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무엇입니까? 잘 살고 못사는 것입니까?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입니까?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살고 죽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기 위해 사는 것처럼 죽음은 숙명적으로 임하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피하기 위해 살아가다가 죽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는 것은 오래 살면서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요즘은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100세 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100세까지는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브라질에는 134세인 “주앙 코엘료 더 소우자”씨가 살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주에는 149세인 “사파르만 소디메조”씨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인 인구는 2017년 7월 17,468명이라고 밝혀졌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100세 이상의 인구수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100살까지 살거나 200살까지 사는 것이 행복한 것도, 만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천하장사도 늙으면 기력이 딸리며, 남을 의지해야 합니다. 스스로 살아갈 수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즐거움과 행복이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사는 것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가요? 100년을 더 산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죽을 뿐이며 또한 인생의 길은 수고와 슬픔뿐이기 때문입니다(시90:10). 그러므로 100년을 더 산다고 할지라도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7세로 생을 마감한 박치기 왕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 김일(1929∼2006) 선수는 10년 이상을 서울 을지병원에서 병마와 싸우다 지내며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김일 선수는 운명하기 직전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김일체육관 관장에게 “백군아, 나 머릿속에 큰 돌멩이가 있는데 그거 좀 빼주라”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은 없다”라는 말을 품고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나폴레옹(1769~1821)은 영국과의 월털루 전쟁에서 참패하고 육지에서 1600㎞나 떨어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최후를 맞으면서 유언장에서 “나의 죽음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으면 사랑하는 프랑스 시민들이 보는 앞에 센 강가에 영면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중국의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제(秦始皇帝, B.C.259~210)는 1만 2천 7백리의 만리장성, 사치의 상징으로 거명되는 길이 690m, 폭 114m의 아방궁, 무수한 호화유적을 남겼으며 그의 무덤(높이 약 70여m, 동서 약 600m, 남북 200여m), 그 외에도 무수한 건축물을 조성하였는데 오직 안전하게 영생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황제는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어디든지 쫓아다녔는데 그의 주변에는 불사약을 구해 오겠다는 수많이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서 서복이라는 사람이 신기루 같은 봉래산에서 불로불사약을 구해오겠다고 하자 서복이 봉래산으로 타고 갈 배에 수많은 보물과 소년소녀 3,000명을 함께 보냈지만 서복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대로 김일과 같은 스포츠로 세계를 제패한 사람도,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도, 시황제와 같은 정치인도 오래 살기보다는 오히려 단명에 그치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인간이 가진 것으로, 인간의 지혜로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더구나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Ⅱ.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동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본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18:32)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또한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죄로 말미암아 절망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마치 일본은 우리나라가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러울 때 일본군이 우리나라를 침입하여 왕조를 폐지하고 36년 동안이나 우리나라를 짓밟다가 결국은 우리나라를 합병시켜 이 땅에 살면서도 나라를 잃어버리고 자유를 박탈당하였습니다. 그 때 연합군들에 의해 일본이 항복하므로 우리나라가 가까스로 국권을 회복하였듯이, 또한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자 UN군이 들어와서 북한을 물리쳤던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절망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므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증거하기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께서 또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 가운데 처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므로 죄에 매여 있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Ⅲ.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무엇으로 인류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실 수 있었을까요? 대부분의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도 충성스럽게 봉사 잘하고 헌신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정작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 잘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친히 증거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친히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인류에게는 대속물이 필요할까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레드카드는 이미 선언되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죄의 대가는 오직 죽음 이외에는 다른 대가로 갚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도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고하셨습니다(창2:16,17).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에도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20)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모든 사람들의 실상에 대해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4:18), “전에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너희”(골1:21)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롬5:10),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거듭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2:1), “허물로 죽은 우리”(엡2:5)라고 증거하므로 영적으로 이미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시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헛된 일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과 지혜와 물질로는 죽은 사람을 절대로 살릴 수 없듯이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우리의 노력과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소생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친히 대속물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신 대속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대속물(代贖物)”이라는 단어에서 대속(代贖, redemption)은 “대신하여 갚아 주다”, “값을 주고 되찾아 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속물”은 “포로나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속전”으로 “몸 값”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에 팔렸으며(창37:28), 만약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게 되면 은 30세겔을 그 값으로 지불해야 했는데(출21:32), 주 예수님께서도 은 30에 팔렸습니다(마26:15).

그런데 주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인류의 죄 값으로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죄 값은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못 박하신 주 예수님께서 그 목숨으로 다 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우리가 죄의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금이나 은 즉 돈입니다. 물질입니다. 인간의 수고의 대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 즉 우리의 죄를 용서함 받는 것은 물질이나 우리의 어떤 수고의 대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벧전1:18).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 값이 갚아졌다는 것입니다(벧전1:19).
또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2:24)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듯이 스스로 나무에 달려 즉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벧전3:18)라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단번에 우리의 죄 값을 대신 갚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는데 그 죽음이 우리의 죄 값이었습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우리의 모든 죄 값이 다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죄사함을 받는 것이며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이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기
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부정적인 목적과 긍정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2. “대속물(代贖物, redemption))”이란 의미가 무엇인가?
3. 우리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물은 어떤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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